레고 집단수용소를 만든 문제아 즈비그녜프 리베라

                                                                  
                                                             Zbigniew Libera (1959-)
 
아직 레고 블록으로 만든 집단 수용소를 보지 못한 분들은 일단 사진 한장 보시고 나머지 사진은 그 밑에 링크를 참조하십시요.


http://puppetmstr.egloos.com/1865921


위의 포스팅에서 점선 위 부분의 레고 집단 수용소를 만든 문제아는 폴란드 예술가인 즈비그녜프 리베라(Zbigniew Libera)입니다. 1959년생인 리베라는 냉전기 공산주의치하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청년기인 1980년대에 지하발행물 간행에 참여하여 정치적 풍자만화를 그린 것이 문제가 되어 1982-1983년에 옥고를 치르기도 합니다.

리베라는 1996년 레고 폴란드 지사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한 레고 블록들과 레고 악세사리들을 이용하여 이차대전중 나치 독일이 운영하였던 강제수용소의 여러 모습들을 재현해냅니다.

그의 작품에는  강제수용소의 막사, 감시탑, 철조망, 시체 화장장, '카나다'라고 불린 수용자에게서 압수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 교수형 당하는 수용자, 수용자를 구타하는 간수, 수용자에게 생체실험하는 장면등, 나치 강제수용소의 여러 모습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리베라는 완성된 레고 집단 수용소의 사진을 찍어, 그 사진들을 이용하여 레고사의 실제 상품들과 흡사한 포장상자들을 만들어내어, 마치 레고 집단수용소 키트가 시중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인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상자의 커다란 레고 로고가 있는 부분에는 'This work of Zbigniew Libera has been sponsored by LEGO SYSTEM'이라는 글귀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1997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우스코우 화랑(Galleri Faurschou)에서 전시되었고, 폴란드, 독일, 브라질 등에서 전시되었으며, 2002년에는 뉴욕시 유태인 박물관(The Jewish Museum in New York City)의 기획 전시회인 'Mirroring Evil: Nazi Imagery/Recent Art'의 일부로 전시됩니다.

그의 작품은 홀로코스트를 어린이 장난 같은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며 처음부터 큰 논란을 불러있으켰으며, 그의 작품을 실제 레고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 착각한 일부 유태인 단체들이 레고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레고 블록을 기증할 때 리베라의 기획의도를 알지 못했던 레고사는 부랴부랴 진화 작업에 나섰으며 문제의 레고 집단수용소 작품의 전시 자체를 중단시키고자 했습니다만, 오히려 예술활동에 대한 사기업의 검열이라는 비판의 역풍을 맞고는 포기합니다.

2002년 뉴욕 유태인 박물관 전시 때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모여 자신들 팔목에 새겨진 죄수번호 문신을 내보이며 항의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즈비그녜프 리베라는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초대되었는데 당시 폴란드관의 조직자는 문제의 작품인 레고 집단수용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것을 제외한 리베라의 다른 작품만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리베라는 오랜 실랑이 끝에 결국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여 자체를 포기하였습니다.

당시 폴란드관의 조직자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장난감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다는 것은 도가 넘는 짓이며 아마 반유태주의적이기까지 할 것이다."
"...taking on the Holocaust with one of the world's most beloved playthings is out of line and perhaps even anti- Semitic." (L.A. Tmes, 5.19.1997)



그런데 마쉬멜로우도 세상을 멸망시킬 수는 있는데 레고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It's the Stay Puft Marshmallow Man." 
                    "I tried to think of the most harmless thing,
                    something I loved from my childhood, 
                    something that could never, ever possibly destroy us....
                    Mr. Stay Puft!"




이런 비판들에 대해 즈비그뉴 리베라는 자신이 반유태주의자라는 것을 부정하며 자신의 작품은 공산주의가 몰락한 동유럽사회에 자유시장이 도입되면서 생기는 아동교육, 사회적 규범, 문화적 불협화음 문제에 대한 도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Libera, 38, backed by his newfound patrons at the fashionable Galleri Faurschou here in the Danish capital, has stood his ground. The Lego collection, he said, is neither anti- Semitic nor irreverent, but a provocation about child rearing, social norms and the cultural cacophony that the free market has brought to formerly Communist Eastern Europe. (L.A. Tmes, 5.19.1997)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리베라는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걸까요?

우선 고려해야할 것은 그의 레고 집단수용소는 'Correcting Devices' 시리즈에 포함되는 그의 작품들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작품들은 낯익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이용, 변형하여 보여주면서, 사회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사회화하고 있으며 그 사회화가 지향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기획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래에  'Correcting Devices' 시리즈의 작품들 몇 개를 소개합니다.

남자 어린이용 장난감 보디빌딩 기구인 Body Master (1994-97)


낯익은 바비 인형의 패러디인 'Ken's Aunt' (1994)



여자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필요할 체모제거를 가르치는 면도 훈련용 아기인형. (1995)



여자 어린이용 장난감 분만대. (1996)



위의 작품들은 어린이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제시되는 성적 역할과 이상형에 대한 문제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레고 집단수용소도 역시 어린이들의 사회화과정에 대한 비판일 것입니다.

그런데 리베라가 문제 삼는 사회화 과정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행위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리베라를 옹호하는 비평가의 일부는 레고를 통해 권장되는 창조, 건설행위가 나중에 집단수용소를 건설하는데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며, 어린이의 놀이는 도덕적으로 순진한 행동이 아니며, 집단수용소를 만드는데도 사용될 수 있는 도적적으로 중립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리베라의 작품을 이해합니다. 

위키페디아의 즈비그녜프 리베라 항목에 있는 다음 구절이 그런 해석의 한 예일 것입니다.

"...the LEGO sets mirror the evil-minded ingenuity required to construct the concentration camps as instruments of terror."  (http://en.wikipedia.org/wiki/Zbigniew_Libera)


그리고 Stephen C. Feinstein은 리베라가 소재로 사용한 레고가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중립적인 소재인 점에 주목하면서 홀로코스트와 같은 극악한 행위의 요소들은 문명 그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으며 단지 그것들을 어떻게 조립하느냐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리베라의 작품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The elements for such atrocity, as one reads Libera's pop-art, exists within civilization. All that is needed is the right person to "assemble" the pieces correctly. (http://www.othervoices.org/2.1/feinstein/auschwitz.html#N4)


리베라의 문제의 작품을 포함한 전시회 'Mirroring Evil: Nazi Imagery/Recent Art'를 기획한 뉴욕시 유태인 박물관의 큐레이터 Norman L. Kleeblatt도 역시 같은 입장에서 리베라를 옹호합니다.

People see that ''we can take the same building blocks that we can use to make houses, resorts and shopping centers and construct extermination camps with them,'' he continued. It raises the issue, he observed, ''of how the Nazis perverted the most human instincts -- for shelter, family and beauty.'' (New York Times, 2.6.2002)



위의 해석들은 레고 자체는 도적적으로 중립인 소재라는 입장을 취하지만, 이런 해석을 조금 더 발전 시킬 수 있습니다.

리베라는 레고로 집단수용소를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품으로 보이게 포장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레고로 상징되는 상업화되고 정형화된 세계가 한 편으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자의 사진이 제안하듯이 실은 일정한 것을 만들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단수용소를 만들도록 조건지워질 때도, 자신은 자유롭게 그것을 만들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지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레고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 무장해제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더 불온한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제기가 레고로 상징되는 상업화되고 정형화된 세계에만 그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홀로코스트 교육이라는 또 다른 사회화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리베라는 자신이 어릴 때 겪은 홀로코스트 교육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9살 때 학교에서 단체로 아우슈비츠 견학을 갔으며, 거기서 그 모든 사진들을 보아야만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쨓든 우리 역사 때문에 홀로코스트와 여기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을 사람들은 폴란드인들에게 기대한다. 그래서 내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기대하던 식은 아닐지라도."  

"I remember when I was 9 years old and my class went on the obligatory trip to Auschwitz and we had to look at all those photographs," he said. "Somehow, because of our history, Poles are expected to speak about the Holocaust and what happened here. So I am speaking about it, but maybe not in the way some people would expect." (L.A. Tmes, 5.19.1997)

1997년 브뤼셀에서 열린 'Art After Auschwitz Conference'에서 리베라는 그의 작품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폴란드 사람이다, 그래서 독에 물들었다."라고 쏘아 붙였습니다.

Then the issue of propriety of the subject, the sanctification of the victims was raised: was not the use of pop art as a means of depiction a mockery? Libera, when questioned about his work, said: "I am from Poland; I've been poisoned."  (http://www.othervoices.org/2.1/feinstein/auschwitz.html#N4)

그렇다면 리베라의 레고로 만든 집단 수용소는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이미지와 함께 제공된 홀로코스트 교육으로 받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그의 작품을 본 사람 중에 한 명은 그런 반응을 표현하더군요. 리베라의 작품과 그에 관한 기사들을 소개한 한 웹싸이트에 한 무명의 눈팅객은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들에서] 강력한 해방감과 소름끼침을 동시에 느꼈다."

...I find them intensely liberating and chilling at the same time. (http://users.erols.com/kennrice/lego-kz.htm)


아우슈비츠 견학에서 돌아온 리베라 어린이는 자기방에 쳐박혀서 방금 본 집단 수용소의 참혹함을 레고블록으로 만들었다 부쉈다 하면서 그 트라우마를 소화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예술비평가 Ernst van Alphen은 장난감으로 홀로코스트를 재구성하는 것은 홀로코스트 교육의 위압성으로 부터 벋어나 그 의미를 익숙한 것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파악합니다.

 Art historical criticism, like that proposed by Ernst van Alphen, has argued that these toys seek to represent and refigure the Holocaust in a more familiar register that recovers its meaning from overbearing Holocaust education programs. (http://en.wikipedia.org/wiki/Zbigniew_Libera)


리베라의 레고 집단수용소를 홀로코스트 교육에 따른 트라우마의 치유과정으로 본다면, 그것은 리베라의 다른 작품들의 시리즈인 'Positives'(2002-2003)와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유명한 역사적 보도사진이 보여주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배우들을 써서 연출하되, 그것이 원래 사진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도록 한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그는 사진의 원판 필름이 네가티브인 것에 착안하여 오리지날인 역사적 사건에 대해 완전히 전도된 의미를 가지는 카피인 그의 작품들을 'Positive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아래에 있는 것이 그의 'Positives' 시리즈의 작품들과 그 오리지날 네가티브가 되는 보도사진들입니다.


Residents (2002)
오리지날 네가티브는 아우슈비츠 해방 장면입니다.


Nepal (2003)

오리지날 네가티브는 월남전 당시 네이팜탄 공격을 받고 도망치는 월남소녀이지요

Miracle (2003)
오리지날 네가티브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장면입니다.



Che, Next Picture (2003)

오리지날 네가티브는 볼리비아에서 사살 당한 체 게바라의 사진...
...인줄 알았는데 저도 속았습니다. 위의 사진도 리베라의 사진입니다. 작품 제작과정을 찍은 사진들 중에 하나더군요.
진짜 오리지날 네가티브는 밑의 사진입니다.


Cyclists
오리지날 네가티브는 이차대전이 시작되는 순간을 찍은, 독일-폴란드 국경의 도로 차단기를 제거하는 독일군 사진이지요.


이 시리즈의 그의 작품들은 모두 트라우마적 사건들로부터 트라우마를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 트라우마가 지워진 복제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과거의 사건에 대한 현재의 의식이 저 사진들처럼 트라우마가 제거된 가짜라는 것을 폭로함으로해서 그 트라우마를 다시 직면하게 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아직 극복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읽을 경우 리베라가 레고 집단수용소에서도 같은 것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원래 사건을 뒤집어 트라우마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리베라만 한 것은 아니지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 도살장'에서도 같은 시도를 하지요. 소설의 주인공인 빌리 필그림은, 이차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에 수용되어있던 중 그곳에서 드레스덴 대공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그는 자신의 꿈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꺼꾸로 진행되는 공습을 상상하지요. 그의 꿈속에서 도시에 번진 불은 점점 작아져 폭탄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불길을 다 흡수한 폭탄은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 폭격기의 폭탄창으로 들어가고, 폭격기는 꺼꾸로 날라가 기지에 착륙하고, 착륙한 폭격기에서는 폭탄을 꺼내 공장으로 보내고, 공장에서는 많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 폭탄을 분해하고, 분해된 폭탄의 부품과 재료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다시 평화롭게 되지요.


리베라의 작품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라면, 그것이 폭로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강요하는 홀로코스트 교육의 폭력성이겠지요. 뉴욕 유태인 박물관의 전시회를 반대한 한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한 다음의 발언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불경스러운 작품들은 끔찍함을 보여주지 않아요. 끔찍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들이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But, she said, irreverent works like these ''won't show the horror,'' adding, ''What is the next generation going to make of the Holocaust if they don't see the horror?'' 
(http://query.nytimes.com/gst/fullpage.html?res=9C0CE5D61131F931A35750C0A9649C8B63&scp=4&sq=Zbigniew%20Libera&st=cse)


홀로코스트 교육도 여느 교육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가치관을 전달하고 그 가치관에 의해 일정한 질서를 정당화 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교육이 트라우마에 의해 이루어질 때, 전달되는 가치관은 즉각적인 수용만이 허락될 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지요.

이런 트라우마에 의한 교육이 한국사람들에게 낯선 것은 아니지요.어린 시절, 고우영 화백이 그린 반공소년 이승복군에 대한 만화를 보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바람에 무장공비에게 입이 찢겨져 죽은 이승복 어린이의 피가 흥건한 찢겨져 나간 입언저리와 땅바닥에 흐르던 시뻘건 피(당연히 까만 잉크색이었겠지만)의 이미지가 아직도 머리 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요. 한 때 시끄러웠던 이승복사건 오보논란도 실은 정확한 진실이 무엇이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이 트라우마 지우기의 문제였을 겁니다.

한국에서의 트라우마는 반공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지요. 홀로코스트교육의 트라우마는 대개의 경우 자유주의적 정치체제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다를까요? 홀로코스트 교육과 정치적 자유주의의 관계가 꼭 필연적인 것일까요?

리베라가 홀로코스트 교육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9살 때는 1968년, 폴란드가 아직 공산당의 일당독재하에 있었을 때입니다. 그 당시의 홀로코스트 교육은 당연히 공산당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탄압을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으로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 것들이 홀로코스트 교육과 정치적 자유주의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들일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일부의 경우에 불과하지만 만약 홀로코스트 교육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와 분리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홀로코스트 교육이 강요하는 트라우마는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어렵게 할 것입니다.

사실 불길한 징후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 자신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인 Norman Finkelstein은 'The Holocaust Industry: Reflections on the Exploitation of Jewish Suffering'라는 책을 써서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으며, 홀로코스트와 관련해서 독일기업과 스위스 은행으로부터 받아낸 보상금이 실제 희생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관련 유태인단체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신성모독에 대한 벌로 정교수 임용에서 탈락하고 교수직을 상실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Norman_Finkelstein


그리고 트라우마에 근거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옹호가 왜 위험한 지는 911 이후의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2년 2월 미국의 학자, 지식인 60 명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에 홉스주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What we're fighting for'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http://www.americanvalues.org/html/what_we_re_fighting_for.html

우리에게 관용적이지 않은 자에 대해 관용적일 수 없다고 선언하는 문제의 성명은 원래는 공포에 근거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홉스적 자유주의를 군사적 모험주의와 사찰국가 강화를 옹호하는 것으로 전환시킴으로서 홉스주의의 파산을 선언한 문서이기도 합니다. 

홉스주의는 부자연적이고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강조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관용과 기존정치질서에 대한 순종을 설득합니다. 그래서 홉스주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토대로 그 위에 권태의 왕국를 건설하려는 기획입니다.

홉스주의가 권태의 왕국을 건설하고 유지를 할 수 있다면(물론 그것도 나름데로 비판할 수 있지만), 최소한 자신의 존재의미는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홉스주의가 토대로 삼으려고한 공포는 오히려 홉스주의적 질서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공포에 질린 사람이 때때로 세상에서 제일 공격적이고 위험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저 위에 테러와의 전쟁을 홉스주의적으로 정당화한 성명은 바로 그런 가능성을 실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사한 과정은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완성되었겠지요.


만약 홀로코스트와 홀로코스트의 정치적 이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면, 그래서 홀로코스트의 정치적 이용을 비판과 이성적 담론의 영역에 포함시키고 싶다면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즈비그녜프 리베라의 레고 집단수용소가 홀로코스트의 신성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놀면서 극복하려는 시도가 의미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홀로코스트 교육이 목표로 삼는 "Never Again!", 즉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는데 홀로코스트 교육이 과연 얼마나 기여를 할까 하는 것입니다.

나치의 집권과 홀로코스트는 대공황과 이차대전에 따른 정치 경제 질서의 총체적인 붕괴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총제적 붕괴가 없을 때 홀로코스트의 위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기우일 수 있고, 그런 붕괴가 왔을 때 "Never Again!'의 구호는 공허하고 무력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Never Again!"을 외치는 사람들은 스스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강박적 반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홀로코스트의 재발을 막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트라우마를 동원한 선악의 이분법보다는 그런 정치 경제적 붕괴를 막기 위한 세심한 관리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 교육이 문제를 악한 자를 찾아 제어하는 것으로 환원시킨다면,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던 정치경제적 조건에 대해 시선을 돌리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니 이미 세계적 경제 위기는 시작되었고(다행히 아직 대공황 수준은 아니지만),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을 꿈꾸는 네오콘들이 설치고 있네요.

만약 홀로코스트가 다시 온다면 같은 이름으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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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의 레고 집단수용소를 소개한 포스팅에서 점선 아래 부분은 리베라의 작품이 아닙니다. 리베라의 작품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레고 매니아들의 싸이트에서 활동하는 'Yoshi X'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의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리베라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겠지요. 그러나 원래 레고 매니아이다보니 리베라에 비해 상당히 더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20일에 올린 것이니 상당히 최근 작품이군요.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ocpages.com/moc.php/237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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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그래이브 수용소에서 미군이 수감자를 학대하는 장면을 레고로 재현한 작품도 있군요. 이것도 리베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요.

http://thelede.blogs.nytimes.com/2009/05/05/visualizing-torture-with-lego/?scp=1&sq=Zbigniew%20Libera&st=cse


저 싸이트에서 한 독자가 남긴 댓글이 이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군요.

"즈비그녜프 리베라를 흉내낸 것이 명백하지만, 그래도 역시 통렬하다. 나는 악의 진부함을 이 것보다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없다."

May 5, 2009 8:47 pm Link

Even though this is a clear Zbigniew Libera rip-off, it is still poignant. I can’t think of a more forceful way to convey the banality of evil.

And yes, people, what the Bushies authorized and practiced _is_ torture. No question about it.

— Pseudo_Jan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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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en.wikipedia.org/wiki/Zbigniew_Libera

http://raster.art.pl/gallery/artists/libera/prace.htm

http://users.erols.com/kennrice/lego-kz.htm

http://www.othervoices.org/2.1/feinstein/auschwitz.html#N4

http://www.artmargins.com/index.php/archive/531-spirituality-is-embarrassing-on-zbigniew-libera

http://modiya.nyu.edu/handle/1964/256


New York Times 기사들

2002년 1월 29일
CRITIC'S NOTEBOOK; Jewish Museum Show Looks Nazis in the Face and Creates a Fuss

2002년 2월 6일
Man Behind a Museum Tempest; A Curator Defends His Show Exploring Nazi Imagery

2002년 3월 2일
Jewish Museum to Add Warning Label on Its Show

2002년 3월 17일
Art/Architecture; Peering Under the Skin of Monsters

2002년 3월 15일
ART REVIEW; Evil, the Nazis and Shock Value


리베라의 강연
University of Michigan, School of Art and Design, 1.19.2006
악센트있는 영어라서 듣기에 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리베라가 직접 하는 강연입니다.
 폴란드에서 전위예술가들에 대한 공격이 주제입니다.




그리고 리베라가 인터뷰에서 자신이 독에 물들었다고 한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한 것이 있네요. 늦게 발견해서 이 글을 쓰는데 참고하지는 못했지만, 역시 아슈비츠 견학에서 받은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있군요.


http://www.artmargins.com/index.php/5-interviews/166-the-artist-does-not-own-his-interpretations-hedvig-turai-in-conversation-with-zbigniew-libera

by 인형사 | 2011/03/09 11:27 | 인형사 찾기 | 트랙백(2) | 핑백(2) | 덧글(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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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You're Ren-h.. at 2011/03/11 06:59

제목 : 홀로코스트와 기억
레고 집단수용소를 만든 문제아 즈비그녜프 리베라 간만에 이글루스 들어왔는데, 아픈 역사를 재현해내는 예술가에 대한 한 블로거의 통찰력 깊은 글을 발견해서 참 기분이 좋다. 히히히. 미국에서 공부할 때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한국에서 워낙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지다보니책이나 글을 읽더라도 깊이있는 사고나 비판, 더 나아가 토론에 참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는데남자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블로그를 통해서 내가 아무리 공식적인 토......more

Tracked from position all.. at 2014/08/19 22:39

제목 : Hollister Deutschland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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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위에 것과는 다른 사람의 작품입니다. 더 정교하게 만든 것 같군요.이 사진들에 대한 내력은 다음에 있습니다.http://puppetmstr.egloos.com/1868163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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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폴란드 예술가 즈비그녜프의 문제작 '레고 집단수용소'를 소개하는 포스팅을 하나 하였습니다.http://puppetmstr.egloos.com/1868163이번에는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리베라가 그의 작품에서 트라우마 숨기기, 드러내기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 ... more

Commented by ghistory at 2011/03/09 20:45
1.

즈비그뉴 리베라→즈비그니에프 리베라.

2.

Galleri Faurschou: 파우르쇼우 갤러리.

3.

'싱갱이': 방언임.

4.

베니스→베네치아.

5.

브루셀→브뤼셀.

6.

아부그래이브→아부 그라이브.

7.

The Holocaust Industry: Reflections on the Exploitation of Jewish Suffering의 한국어 번역판 서지정보:

신현승 번역,『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한겨레신문사 출판부[현재의 한겨레출판], 2004)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2
지적 감사 합니다.
1번은 '즈비그녜프'면 될 것 같군요.
2번은 '파우스코우'로 발음 하더군요. 덴마크 발음일텐데 자신이 없어 그냥 두었던 것이었지요. 미시간대 강연 24분 10초를 보십시요.
3번은 실랑이로 고쳤습니다.
4번, 5번은 말씀하신대로.
6번은 띄어 쓰기는 했는데, 아무리 들어 보아도 '아부 그래이브'로 발음하더군요. 현지발음은 모르겠지만 영어권 보도에서는 그렀습니다.
7번은 여기에서 ghistory님이 번역본의 정보를 제공해 주신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타누키 at 2011/03/09 20:57
잘봤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2
따분한 글이 될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눌눌 at 2011/03/09 21:07
잘 읽었습니다
이런 레고와 예술도 있었군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3
레고와 예술의 세계는 넓고도 넓지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3/09 21:11
잘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글이네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4
흥미있으셨다니 저도 즐겁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f at 2011/03/09 21:12
뭐 어쨌다는겨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5
어쩌자는 것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죠.
Commented by 군중속1인 at 2011/03/09 21:56
흥미롭게 끝까지 잘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6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11/03/09 22: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7
새로운 세계라는 것은 항상 자기 주변이 있는 것이겠지요?
Commented by 역설 at 2011/03/09 22:25
잘 읽고 보고 느끼고 갑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8
그럼 리베라도 저도 목적달성했습니다.
Commented by Sita at 2011/03/09 23:18
아주 흥미로운 작품들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49
악동의 장난기가 지나치지요?
Commented by daewonyoon at 2011/03/09 23:26
재밌게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0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분들이 많아 한 숨 놓았습니다.
Commented by 삶은계란 at 2011/03/09 23:32
와. 정말..... positive로 바꾸는 발상에서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긴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하면... 잊혀진 과거사를 환기시키는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는거같고... 재미있네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1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Commented by 미뇽 at 2011/03/09 23:42
잘읽었습니다.....많은 생각을 하고 가게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2
많은 생각을 하셨다면 리베라가 기뻐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바람불어 at 2011/03/09 23:45
사진만 봤을땐 굉장히 악의적이라고 느꼈는데
저렇게 만든 내력을 들어보니 그것도 일리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재미있는 발상이라할순없지만 의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3
장난기 있는 악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예술가 중에는 사람들의 약점과 급소를 귀신 처럼 알아내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 약점을 찔렀다는 점에서 의미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바람불어 at 2011/03/10 21:50
약점, 급소라는 표현 공감합니다.
'어릴때 학살이나 재난의 재현을 보고 정신적 상처로 남는다' 이것도 좀 공감이 됩니다.

일본학생이 멋모르고 히로시마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박물관 들어갔다온후에 얼굴이 사색되어서
토하고 그랬다는 글을 본적있습니다. 어떤 역사관을 재현하느냐는 문제도 문제지만
일종의 충격요법이 '아무 생각없던 어린 학생'에게 긍정적인 효과만은 남기지않는다 뭐 그런
얘기였죠.
Commented by 남극탐험 at 2011/03/09 23:53
레고도 놀랍지만 positive시리즈 작품들이 더 대단하네요. 고통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이라고 할까요...좋은 글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5
그렇죠. 고통을 잊지 않으면서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Commented by 미니 at 2011/03/10 01:09
"Never Agan!"i->"Never Again!"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5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Dez at 2011/03/10 01:09
와 정말 대단하군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6
저런 작품을 만들려면 강심장이 필요하겠지요.
Commented by 미니 at 2011/03/10 01:09
분명히 잘 표현한 작품이지만 좀 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웠다면 더 나았을 것 같은 작품이군요..
많은 생각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6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걸로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빈터 at 2011/03/10 02:02
아래의 positive 사진들은 많이 어렵네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이 예술이고 또 글쓴 분이 말한 것과 같은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모욕과 조롱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09:58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엄숙한 것과 또 동시에 보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Commented by 오오 at 2011/03/10 06:28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상당한 논란이 된(그리고 여전히 되곤 하는) 작품인것으로 아는데...
positive도 인상적이네요.

만화 영화 시작 바로 직전에 이승복 어린이 시체사진을 여과없이 보여주던 당시의...
트라우마 교육에 대한 기억도 살아나구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0:01
엇! 리베라를 이미 알고 계신 분이 오셨네요.
상당히 파격적인 사람이지요.

그런데 다행히 저는 그 사진은 기억에 없습니다. 분명히 보기는 보았을텐데 남아있지 않고, 만화의 장면은 또렷하네요.
Commented by 오오 at 2011/03/10 11:49
작가를 안다기 보다 저 레고 작품을 알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주 대강의 백스토리...일종의 예술 작품으로 레고사의 협찬을 받아 만들었다가 물의가 되었다...뭐 그런정도.

레고 동호인들 사이에서 밀리터리 레고가 나오면 좋겠다...라는 얘기가 나올때 마다 종종 등장했던 떡밥이기도 했구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46
레고 동호인이셨군요.

그렇다면 상자의 독재로부터 벋어난 자유인들이겠군요.

저는 레고와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만, 소시적 플라스틱 모델은 즐겨 만들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승복사건의 트라우마를 간직할 정도의 나이이시고 레고 동호인이면 내공이 상당한 분이시겠습니다.

말씀이 나온 김에 생각해보니 한국에도 리베라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소재가 없지는 않을 것 같더군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무서워서 감히 말하지 못하겠군요.

리베라가 다룬 홀로코스트는 그래도 사실관계나 역사적 평가에서 이미 상당히 합의된 소재인데, 한국사에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이 너무 많지요. 그런 걸 다룰 강심장이 있을까요?
Commented by 네에 at 2011/03/10 10:56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34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오엠지 at 2011/03/10 11:09
와우 좀길었지만 잘봤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34
안 그래도 너무 길게 쓴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 주셨군요.
방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하루살이 at 2011/03/10 11:57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33
긴 글 흥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cryingkid at 2011/03/10 12:06
기억과 상처와 역사를 '오늘날'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감을 얻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32
이렇게 멋있게 요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prey at 2011/03/10 16:30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하면 인형사님 포스팅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31
다 재료가 좋은 덕분입니다. 요리사는 한 게 별로 없습니다.
Commented at 2011/03/10 17: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0 17:30
당연히 괜찮습니다. 많은 분들이 볼수록 좋은거죠.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1 03:19
그런데 제가 실수한 것이 있어 조금 수정했습니다.

체 게바라의 오리지날 네가티브가 진짜 오리지날이 아니었더군요. 수정한 내용에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자료도 약간 더 추가했습니다.

퍼간 곳에도 따라 고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베지타 at 2011/03/10 17:58
혁신적인 예술가들은 벽을 허무는데 개의치 않으므로 전 지지합니다. 레고가 얼마나 다양한걸 표현할 수 있는데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1 02:55
그런데 부순 벽은 또 쌓아야 하지요, 핑크 프로이드의 벽의 마지막 장면처럼요,

이글을 쓰면서 레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씀대로 엄청난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 정형화된 획일성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획일성과 다양성이 쉽게 구분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Commented by fthero at 2011/03/10 19:27
저 작품들을 보면 슬픔이 느껴지는군요.

부정적인 기억을 부정적이지 않은 겉모습으로 덮씌우는 시도는, 가해자 측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역시 할 수 있는 일이네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과 이제는 잊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쪽과의 충돌은 아닐까 싶은 기분도 듭니다.
어느쪽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긴 어렵지만, 양측에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는 것 역시 불가능할 것 같네요.

흥미 깊게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1 03:03
동의합니다. 저는 투라우마를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극복하는 것에 집착하는 바람에 슬픔을 미쳐 생각 못했네요.

당연히 웃음의 이면은 슬픔이지요.

그리고 때로는 진실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잊혀진 과거는 영면을 할 수도 있지만, 원귀가 되어 계속 돌아올 수도 있지요.

원귀는 원을 풀어주고 후하게 장례치뤄서 보내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리베라의 작품은 행복한 장의사가 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무당이라고 해도 되겠고요.
Commented at 2011/03/11 05: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가라나티 at 2011/03/11 09:50
그런데 한국에서 누가 일본군 성노예(예전에는 위안부로 불렀죠...)나 재암리 학살을 소재로 저런 식으로 다룬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저런 접근법에 대해서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물론 작가 자신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고 해도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1 10:54
그렇겠죠. 그래서 저도 위에 오오님에게 드린 덧글에서 조심스레 언급을 했지요.

그러나 충분히 중요한 문제제기를 한다면 이 글을 쓴 저로서는 지지한다고 해야 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과거의 상처는 언제가는 묻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Commented by 바람불어 at 2011/06/08 06:11
가라나티 /

뒤늦게 리플 남겨봅니다.
그런 사건이 공식적으로 정리되고 '어느 정도' 해결을 본 후 박제화까지될 무렵이면
가능하리라 봅니다.
Commented by slytea at 2011/03/11 20:08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 일본 강진 소식 때문에 기분이 좀 이상했는데
인형사님 글까지 읽고나니 새삼 인간은 혼자가 아니고 사회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구나 해요.
각자의 이해가 부딪치고 덕분에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런 다변화된 시각을 내놓는 분들이 있어서 또다른 상생의 길도 생길 수 있지 않나 합니다.
긴글 감사히 잘 읽었어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0:19
왜 기분 상하셨나 했는데 역시 댓글들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과거의 그림자에서 벋어나 진정한 화해를 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몽상가 at 2011/03/11 20:19
저는 어릴 때 대낮에 티비에서 마루타를 봤어요.
지금까지도 몇장면이 잊혀지지 않아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0:20
저는 다행히 마루타는 나이가 좀 들은 다음에 알게 되었네요.
Commented by Bo-Y at 2011/03/11 20:28
오 이런건 처음 알았어요
마지막 레고 사진 9장은 무슨 장면인지 상상하게 되어서 더 섬뜩하네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0:22
저기서는 자신의 죄를 감추지 말고 고칠 것을 요구하고 있지요.
오바마는 뭘 하고 있는지?
Commented by 레네트 at 2011/03/11 20:42
좋은 글 읽고갑니다:)
자신이 경험한 추악한 무엇인가가 두렵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안되는것같네요...
근데, 밑의 레고 사진9장은 예전에 봤던 실제 사진이 생각나는군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0:23
피해서도 안되지만 또 얽매여서도 안되는 것이겠지요.
Commented at 2011/03/12 16: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7:06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있겠죠. 10년 정도? 20년 정도?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걸 보면 시간표가 갑자기 쭉 당겨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림들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8:17
그 동안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Commented at 2011/03/12 16: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2 16:58
고쳤습니다.
Commented by 초우-Cboyblues at 2011/03/12 20:54
정말 섬뜩한 예술이군요 - 잘 봤습니다 -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4 03:03
그러나 그 섬뜩한 것이 악몽이 되지 말라고 만든 작품이겠지요.
Commented by Cicero at 2011/03/13 14:53
이런 계획의도가 있었군요. 의도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다루는 소재가 소재이니 껄끄러움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4 03:09
cicero님이 찾는 것이 그곳에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dffree at 2011/03/13 15:05
잘읽고 갑니다. 시각적 예술에 영 문외한인 저도 뭔가 느낄수 있게 해주는 포스팅이네요. ^^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4 03:04
저 역시 문외한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도 뭔가 느끼는 바람에 좀 찾아 보았지요.
Commented by 천산밍하 at 2011/03/14 03:02
대단히 역설적인 작품이네요. 이상하게 전 직접적으로 묘사된 공포보다 이런방식으로 표현된것에 더 두려움을 느껴요. 강렬하네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11/03/14 03:08
저도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이승복 사건의 사진보다는 만화가 기억에 남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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