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05일
친일파의 반일
몇 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중앙청을 부술 때, 어떤 사람과 격하게 논쟁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는 중앙청 철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논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이므로 그런 역사의 흔적도 보존하여야 한다. 그 흔적을 없앤다고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일제가 지었다고 하여도 조선 땅의 나무와 돌을 가져와 조선 사람의 노동으로 지은 것이다. 원래 우리 것을 잠시 빼앗겠다가 되찾은 것인데 무엇이 못마땅하여 부수는가?
처음 정부기관이 과천으로 이사 갈 때, 이미 중앙청 처리문제가 제기되어 광범위한 여론수렴 끝에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기로 결론을 보았던 사안이다. 이미 막대한 세금을 들여 박물관으로 개조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전의 의사결정과정은 무시하고 대통령 일인의 독단에 의해 그 결정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상대방은 중앙청 철거에 대한 지지가 확고한 상태였고 내가 계속 반대 의견을 표시하자, 친일파들이나 중앙청 철거에 반대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내가 반대 의견을 견지하면 친일파로 보겠다는 이야기이다.
나야 일제시대에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므로 친일파일리는 만무하지만 그 말을 듣고 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진짜 친일파라면 중앙청 철거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까? 내가 내린 결론은 친일파라면 중앙청 철거에 적극 찬성하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단 친일파라면 과거 친일의 흔적이 빨리 없어지는 것을 더 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구체적인 실익이 없는 사안에 대해 반대하여 과거의 친일 행적이 재조명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이런 기회주의적인 계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출생의 비밀과도 연결돼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친일파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대세에 추종하기 위하여 반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반일 이데올로기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만들고 유지해온 사람들이 바로 친일파들일지 모른다는 가정이다.
해방이 이후 한국이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고 친일파가 한국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지배층은 한 사회의 부와 권력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이념적 지형도 정의한다. 한국인의 강력한 반일주의와 민족주의가 그들 친일파 출신 지배층의 문화적 이념적 지배와 무관하게, 아니 오히려 그것에 반대하면서 형성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여기에도 그 형성에 친일파가 깊이 개입되어있지 않을까?
친일파의 대부분은 일제시대에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제의 지배기구에서 중하급의 관리자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일본식 근대화 모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들이 해방 후 독립국가의 지배층이 되었을 때, 그들이 알고 있는 일본식 모델을 새로운 국가건설에 적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를 주어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꾸고 그대로 차용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모방은 심각한 모순을 야기한다. 제국주의시대 때 일본의 민족주의는 배타적인 자기중심주의였다. 다른 것의 카피임을 부정하는 오리지날을 카피하면, 카피하는 순간 그 카피는 가짜가 되고 만다. 이 경우 카피는 자신이 카피임을 부정하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을 카피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친일파의 소산이면서도 동시에 반일적이고, 친일파가 중앙청 철거에 찬성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친일 행적과 신흥국가 건설에서 일본 모델의 채용, 그러면서도 강력한 반일 민족주의를 주창한다는 상호모순되는 것의 공존을 한 몸으로 체현하는 사람이 박정희가 아닌가 싶다. 일제하에서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고 일제의 군인이 되었던 사람이 독립국의 수장이 되어서는 일본 모델에 충실한 산업화를 추진했으며, 최소한 이념과 수사의 차원에서는.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웠다. 이런 그의 모순된 행적을 개인적 차원의 기회주의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박정희의 모순이 한국 지배층의 친일과 반일의 공존이라는 모순을 집약해 표현해주는 예일 것이다.
이런 모순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친일청산작업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정부 여당의 책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아마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박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짜 적은 정부 여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민족주의적 잣대는 자신들이 만들고 전파시킨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뿌린 모순의 씨앗이 자라나 되돌아오는 것이다. 처음에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모방한 천박함의 업보이다.
그러나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측도 좋아할 것 없다. 친일과 반일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친일청산을 주장하고 있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친일과 반일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친일청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학계와 민간의 논의 맡기는 것이 아마 정도인 사안일 것이다. 그러나 기왕 시작된 것 어쩌면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과 반일이 둘이 아니고 하나인 모순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기회에 한바탕 굿판을 벌여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그러나 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사실이 밝혀진다고 중간에 어영부영 주저앉을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기회에 대한민국 50년사의 의미를 반성해보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일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이므로 그런 역사의 흔적도 보존하여야 한다. 그 흔적을 없앤다고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일제가 지었다고 하여도 조선 땅의 나무와 돌을 가져와 조선 사람의 노동으로 지은 것이다. 원래 우리 것을 잠시 빼앗겠다가 되찾은 것인데 무엇이 못마땅하여 부수는가?
처음 정부기관이 과천으로 이사 갈 때, 이미 중앙청 처리문제가 제기되어 광범위한 여론수렴 끝에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기로 결론을 보았던 사안이다. 이미 막대한 세금을 들여 박물관으로 개조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전의 의사결정과정은 무시하고 대통령 일인의 독단에 의해 그 결정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상대방은 중앙청 철거에 대한 지지가 확고한 상태였고 내가 계속 반대 의견을 표시하자, 친일파들이나 중앙청 철거에 반대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내가 반대 의견을 견지하면 친일파로 보겠다는 이야기이다.
나야 일제시대에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므로 친일파일리는 만무하지만 그 말을 듣고 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진짜 친일파라면 중앙청 철거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까? 내가 내린 결론은 친일파라면 중앙청 철거에 적극 찬성하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단 친일파라면 과거 친일의 흔적이 빨리 없어지는 것을 더 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구체적인 실익이 없는 사안에 대해 반대하여 과거의 친일 행적이 재조명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이런 기회주의적인 계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출생의 비밀과도 연결돼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친일파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대세에 추종하기 위하여 반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반일 이데올로기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만들고 유지해온 사람들이 바로 친일파들일지 모른다는 가정이다.
해방이 이후 한국이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고 친일파가 한국의 지배층이 되었다는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지배층은 한 사회의 부와 권력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이념적 지형도 정의한다. 한국인의 강력한 반일주의와 민족주의가 그들 친일파 출신 지배층의 문화적 이념적 지배와 무관하게, 아니 오히려 그것에 반대하면서 형성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여기에도 그 형성에 친일파가 깊이 개입되어있지 않을까?
친일파의 대부분은 일제시대에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제의 지배기구에서 중하급의 관리자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일본식 근대화 모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들이 해방 후 독립국가의 지배층이 되었을 때, 그들이 알고 있는 일본식 모델을 새로운 국가건설에 적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를 주어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꾸고 그대로 차용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모방은 심각한 모순을 야기한다. 제국주의시대 때 일본의 민족주의는 배타적인 자기중심주의였다. 다른 것의 카피임을 부정하는 오리지날을 카피하면, 카피하는 순간 그 카피는 가짜가 되고 만다. 이 경우 카피는 자신이 카피임을 부정하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을 카피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친일파의 소산이면서도 동시에 반일적이고, 친일파가 중앙청 철거에 찬성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친일 행적과 신흥국가 건설에서 일본 모델의 채용, 그러면서도 강력한 반일 민족주의를 주창한다는 상호모순되는 것의 공존을 한 몸으로 체현하는 사람이 박정희가 아닌가 싶다. 일제하에서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고 일제의 군인이 되었던 사람이 독립국의 수장이 되어서는 일본 모델에 충실한 산업화를 추진했으며, 최소한 이념과 수사의 차원에서는.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웠다. 이런 그의 모순된 행적을 개인적 차원의 기회주의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박정희의 모순이 한국 지배층의 친일과 반일의 공존이라는 모순을 집약해 표현해주는 예일 것이다.
이런 모순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친일청산작업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정부 여당의 책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아마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박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짜 적은 정부 여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민족주의적 잣대는 자신들이 만들고 전파시킨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뿌린 모순의 씨앗이 자라나 되돌아오는 것이다. 처음에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모방한 천박함의 업보이다.
그러나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측도 좋아할 것 없다. 친일과 반일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친일청산을 주장하고 있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친일과 반일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친일청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학계와 민간의 논의 맡기는 것이 아마 정도인 사안일 것이다. 그러나 기왕 시작된 것 어쩌면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과 반일이 둘이 아니고 하나인 모순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기회에 한바탕 굿판을 벌여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그러나 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사실이 밝혀진다고 중간에 어영부영 주저앉을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기회에 대한민국 50년사의 의미를 반성해보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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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4/09/05 10:34 | 옛글 창고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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